▲ 21세 이하 남자 단식에서 함유성이 우승한 뒤 북한 선수단 전체가 사진 촬영을 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 투어 플래티넘 신한금융 2018 코리아 오픈에서는 장우진(미래에셋대우)이 남자 단·복식과 혼합복식 3관왕에 오르고 남북 단일팀인 장우진-차효심(북한) 조가 혼합복식에서 우승하는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북한은 유망주 함유성이 21세 이하 남자 단식에서 정상에 오르는 소중한 성과를 거뒀다. 함유성은 결승전에서 삼베 고헤이를 세트스코어 3-1로 물리친 것을 비롯해 16강전부터 4명의 일본 유망주를 잇따라 눌렀다. 탁구 중흥기를 열고 있는 일본 선수들을 모조리 이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북한 스포츠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종합 7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종합 34위 등 1990년대 이후 정체기 또는 다소간 침체기를 겪고 있다. 1980년대에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88년 서울 올림픽,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 연이어 불참하면서 국제 대회 경험 부족이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비교적 꾸준하게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가 탁구다. 리우 올림픽에서 북한(동 1)은 중국(금 4 은 2) 일본(은 1 동 2) 독일(은 1 동 1)과 함께 메달을 딴 4개 나라에 들었다. 여자 단식 동메달리스트인 김송이는 오른손 셰이크핸드 수비 전형으로 북한 여자 탁구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대회 기간 남과 북 ITTF 삼자는 오는 11월 스웨덴 오픈과 오스트리아 오픈에 11명의 단일팀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는데 이 대회에 출전할 단일팀 멤버로는 서효원(한국마사회)-김송이(북한) 조가 먼저 꼽힌다. 둘 모두 수비 전형인 서-김 조는 이번 대회 여자 복식 8강전에서 중국의 주율링-왕만유 조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졌지만 수준급 경기력을 보였다. 

탁구 복식 조는 수비수+공격수는 경기 효율성에서 수비수+수비수 조에 뒤지는 데다 서효원과 김송이가 국제 대회 경쟁력이 있다는 점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과 부산 세계단체전선수권 대회까지 내다볼 수 있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남북 탁구인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임원 가운데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인 주정철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은 한국으로 치면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정도이다. 

기억을 되살려 봤더니 1987년 뉴델리(인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동메달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주정철과 홍철 리근상 김성희가 나서 중국과 스웨덴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북한은 다음 대회인 1989년 도르트문트(독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에서도 스웨덴과 중국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주정철은 이 대회에서도 홍철 리근상 김성희와 함께 출전했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 장지아리앙 천룽찬 마원거 왕하오가 주전인 세계 최강 중국, 얀 오베 발트너 에릭 린트 요르겐 페르손 미카엘 아펠그린 등 황금 세대가 이끈 스웨덴과 맞설 수 있는 전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때 주전이 주정철이었다.

이 무렵 북한 선수들 가운데 김성희는 세계적인 탁구 클럽인 엥비(스웨덴)에서 임대 선수로 활약했으며 홍철은 엥비에 단기 유학을 다녀왔다. 약간의 시차가 있는데 유남규와 김택수도 엥비 클럽에서 활동했다. 

리근상과 김성희는 1991년 지바(일본) 세계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멤버로 한국 탁구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수비 전형으로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었던 리근상은 한국의 수비 전형 홍순화와 혼합복식 조를 이뤘고 김성희는 성적을 우선해 뒤에 부부가 되는 리분희와 혼합복식 조가 돼 동메달을 차지했다. 

북한 탁구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배출하지 못했지만 남녀 모두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탁구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만한, 일정한 수준의 경기력을 지키는 비결은 무엇일까. 

탁구계의 국제통인 박도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탁구 테크니컬 디렉터(Technical Director)는 먼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과 교류 협력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영향력이 있다고 봤다. 중국은 지도자를 장기간 북한에 파견하기도 했고 북한 선수들의 중국 원정도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탁구 경기력이 자연스레 북한으로 이전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과 중국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북한 탁구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박도천 TD의 판단이다. 

박도천 TD는 북한은 1970년대 이후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북한 나름대로 탁구 육성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매우 교과서적이면서 기본기에 충실한 북한식 탁구가 만들어졌고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탁구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탁구가 널리 보급된 생활체육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우수한 인원을 공급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나타났듯이 탁구 종목의 경우 남북 관계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단일팀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분단 이후 오랜 기간 한국과 북한은 날카롭게 맞서기도 했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따뜻하게 교류하고 있기도 했다. 특히 탁구는 남과 북의 경기력 차이가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종목 가운데 하나이고 세계선수권대회가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분리되기 전에는 2년마다, 분리된 이후에는 해마다 열리고 있어 좀 과장하면 남북 선수들은 잘 만나지 않는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난다. 우수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부터 만나게 되니 10년 이상 교류하는 예도 적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런 사례가 여럿 있었다. 북한 탁구가 일정한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하며 한국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는 건 남북 스포츠 교류, 나아가 남북 전체 교류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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